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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원장의 책갈피(178) 한센병

수리수리동술이 2011. 10. 30. 22:12

한센병

 

 한센병(Hansen's disease)은 많은 사람들이 나병, 문둥병으로 알고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나병, 문둥병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환자들에게 예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이제는 공식적으로 한센병이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한센병은 구약성서에서 천벌로 묘사되거나 한국의 경우 문둥이라는 말이 전라도나 경상도 지방의 욕설일 정도로 옛날부터 멸시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러한 멸시는 근대에도 계속되어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한센병환자들을 소록도에 강제 수용했으며, 불임수술, 강제노역 등으로 그들의 인권을 짓밟았습니다. 심지어는 당시 병원장이었던 수호원장이 언론에서는 환자들을 보살피는 선행을 베푼다고 미화되었지만 실제 삶속에서는 한센인들을 강제노역, 여성과 남성의 분리, 불임수술 등으로 못살게 굴다가 환자에게 살해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일명 물방이라고 하는 독방에 가두기도 했는데 방의 구조가 문턱이 굉장히 높고 방에 고의로 물을 채워넣은 구조로서 이는 나병환자를 하루라도 빨리 죽이기 위해서 특별히 고안되었다고 합니다. 이 물방에 갇힌 나병환자들은 겨울이 되면 물방의 얼음이 얼어붙는 바람에 얼어죽기도 했습니다.

 

 

 

 

 광복이후에도 비토리섬이라는 곳에서는 토지소유문제로 분쟁이 발생 지역주민들에게 학살 당하는 일 등이 벌어질 정도로 한센인들은 비극의 역사를 걸어왔습니다. 이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된 것은 1965년 당시 소록도국립병원장이 소록도에 거주하는 한센병 환자들을 배려, 과수업, 양돈업 등으로 자립을 할 수 있게 하면서부터였습니다. 병원장은 한센인들을 위한 축구팀도 만들어서 한센인들이 몸만 불편할 뿐, 비환자들보다 못한 게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병원장의 활약은 소설가 이청준이 쓴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고령환자들의 경우 가족들이 있는데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이들의 인권 개선 문제는 사회가 해결해야 할 숙제 중 하나입니다. 한센병은 법정 감염병으로는 제3군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잘못알고 있지만 왠만한 신체적인 접촉, 심지어 성적인 접촉으로도 감염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실과는 다르게 아프리카에서는 아직도 한센병 환자들은 신의 저주를 받으 사람으로 간주되어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아프리카 한센병 환자들에게 유독 관심을 가졌던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한국의 슈바이쳐라고 불리는 고 이태석신부님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로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계신 분이지요.

 

 

 

 

 얼마전 서점에 책을 한권 사러갔습니다. 다름 아니라 스티브잡스의 전기였습니다. 1천여 페이지에 가까운 그의 전기는 읽기 겁날 정도로 두꺼웠지만 많은 사람들의 관심으로 현재 베스트셀러 1위더군요. 저도 당연히 그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옆에 누군가가 사려다 놓고 갔는지 스티브잡스의 전기에 비해서 무척 얇은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표지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익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인 이태석 신부님이었습니다. 신부님의 일대기를 담은 책이었습니다. 영화의 감흥이 살아나서 일까요? 저는 주저함 없이 그 책을 구입했습니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스티브잡스의 삶과 이태석 신부의 삶을 직접 비교할 수는 물론 없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고 해서 더 위대한 삶을 산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톤즈 사람들에게는 스티브잡스는 아무도 아니었으니까요.

 

 

 

 

 슈바이쳐 박사는 말했습니다.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좋은가?". 이태석 신부님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그의 사랑을 헌신적으로 아낌없이 주었을 때 행복을 느끼셨던 분이었습니다. 특히 한센병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대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국에서 폐타이러를 이용해서 한센병 환자들의 각기 다른 발모양에 맞춰 신발을 만들어 준 것은 정말 그의 사랑이 실천하는 사랑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는 소소한 감동이 있는 책입니다. 영화와는 다른 글자로 보는 감회라고 할까요? 물론 그분의 일대기를 200여페이지에 요약했다는 것이 스티브잡스의 전기와 비교해서 너무 약소해 보일수도 있지만 페이지 하나하나에 강한 힘이 있습니다. 특히 2009년 생전 말기암과 투병중인 마지막 공식 석상에서 말씀하신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특히 저 같은 의료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어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었습니다.

 

 "... 사실 저는 전문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들처럼 특별한 백신을 개발한 것도 아니고 고도의 높은 기술로 불치의 환자들을 고친 것도 아닙니다. 단지 내세울 것 없는 자그마한 의술로 병원이 없는 곳에서 원주민들과 몇 년 살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이 상을 받을 만한 훨씬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신데, 라고 생각하니 제 것도 아닌 이 상을 몰래 훔쳐가는 듯한 생각이 들어 괜히 죄책감마저 들기도 합니다. 아무튼 보잘것없는 저에게 이러한 큰 상을 주신 여러분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열심히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가 그들에게 베푼 것보다 얻을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자그마한 것에 기뼈하고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진 것은 없어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많이 가져야 하고 남들보다 더 누려야 행복하다는 우리의 행복관이 안타깝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저의 동료 의사들에게 감히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저는 환자가 제 진료실에 들어오면 한 1~2분 정도는 아무 말 하지 않고 환자의 눈을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환자의 눈을 통해서 어느 정도 질병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환자와 제가 어느 정도의 인간적인 교감을 통해서 서로간의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와 환자의 만남은 의사와 환자의 만남이기 이전에 인간과 한 인간이 만나는 진실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만남은 육체와 육체의 만남이기도 하지만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고귀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매일 병실에서 이루어지는 환자들과의 만남이 질병치료를 위한 단순한 만남이 아닌 인간의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고귀한 만남으로 승화시키는 의사분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