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두번째 에피소드

김동석원장의 책갈피 (180) 썩은 사과

수리수리동술이 2011. 11. 27. 22:57

썩은 사과

 

 썩은 사과를 상자에 그냥 방치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얼마 안있어서 주변의 깨끗했던 모든 사과들이 상해버립니다. 이것이 그냥 사과상자안의 문제라면 괜찮습니다만 조직내부의 '썩은 사과'같은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어떤 조직도 썩게 만들 수 있는 썩은 사과는 그만큼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조직의 '깨진 유리창' 보다도 훨씬 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흔히 ‘깨진 유리창’으로 불리는 사소한 실수나 불친절, 비리는 대수롭잖게 넘겨지는 것이 문제이지 아예 눈에 띄지 않거나 일부러 숨겨지지 않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을 수 있기에 선택과 집중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썩은 사과에는 반드시 보호세력이 존재하며, 그들은 조직시스템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기에 눈에 잘 띄지 않고 처치 또한 어렵습니다.

 


 

 

경영학자 미첼 쿠지 박사와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홀로웨이 박사의 책《당신과 조직을 미치게 만드는 썩은 사과》는 문제인물을 키우는 조직시스템의 특성과 그로 인한 손실규모를 통계적으로 밝힌 최초의 책입니다. 저자는 25년 이상 조직개발 컨설턴트로서 활약해왔습니다. 두 저자는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의 CEO·경영진·부서장·각종 팀장 및 현장감독관 4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2년 여의 심층 인터뷰 및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썩은 사과가 발생하는 조직환경과 그들의 특징, 그로 인한 악영향과 손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해냈습니다.


 1995년 2월 27일,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투자은행이 도산을 맞습니다. 1762년에 설립되어 <80일 간의 세계일주>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은행은 그렇게 단돈 1파운드에 매각되는 운명에 처하고 마는 것이지요. 너무나 유명한 베어링 은행 사태,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썩은 사과’ 닉 리슨의 이야기입니다. 베어링 은행 사태는 한 명의 썩은 사과가 거대기업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예화입니다. 당시 20대에 불과했던 그가 233년 역사의 은행을 하루아침에 파산으로 몰고 갈 수 있었던 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비양심·비윤리를 넘어 범죄 행위마저도 서슴지 않았던 목적지향적인 그의 성격과, 성과가 좋다는 이유로 그의 전횡을 묵인했던 경영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베어링 사태 후 16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기업들은 이와 같은 문제인물을 처치하지도, 문제인물에 동조하거나 묵인하는 조직시스템을 혁신하지도 못한 채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몇몇 사례 연구 외에, 이제껏 썩은 사과로 인한 손실을 구체적으로 밝힌 연구조차 없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얼마나 다루기 복잡하고 곤란한지를 보여줍니다.

 조직 피라미드의 상부에서는 문제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그들은 강력한 독성을 가지고 자신의 주변·팀·조직 전체로 빠르게 오염을 확산시켜 나갑니다. 경영진이 문제를 알아차렸을 즈음이면, 썩은 사과의 희생자들은 이미 그의 행동방식에 적응했거나 물든 상태이며 업무 프로세스는 썩은 사과에게 휘둘리고 있을 것입니다. 조직환경은 이미 썩은 사과상자가 되어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우왕좌왕하게 될 것입니다.

윤리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글로벌 기업·능동적인 소통을 하는 글로벌 인재들과 정면 승부를 벌여야 하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썩은 사과를 보유한 조직은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이건희 삼성 회장이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야 한다”면서 삼성테크윈 사장을 경질하고 높은 감사를 주문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 책의 추천사에서 제임스 비모스키(James Bemowski) 두산그룹 부회장은 “위계문화란 관리를 용이하게 하고 긴밀한 공동작업과 효율적인 업무수행을 이끄는 한편, 조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상의하달식 태도를 키우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리더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거나 가혹한 비판을 가하고, 자신의 의견과 지시를 받아들이길 강요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합니다. 한국식 조직문화가 자칫 썩은 사과가 발생하기 더없이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지금껏 대부분의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소수의 구성원이 다른 이들을 은밀히 학대하거나 자신의 안위만을 고려하며 직장을 무기력하고 고통스러운 곳으로 만들어도, 상대가 상사이거나 임직원과 관계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묵인하거나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우리 기업문화는 군대식 ‘절대복종’이 내면화되었기에 상관이나 핵심보직에 썩은 사과가 있을 경우 문제가 더욱 심각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잡스의 혜안, 뉴튼의 호기심, 파리스의 아름다움 등을 가진 다양한 사과’가 공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한 명의 썩은 사과로 인해 조직 피라미드의 상당 부분이 오염되면, 제 아무리 훌륭한 프로젝트를 굉장한 규모로 진행한들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하는 ‘썩은 사과의 법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썩은 사과는 반드시 손실을 가져온다. 그들은 도처에 존재하며, 비록 유능해 보인다 해도 그들이 내는 성과는 숨겨진 손실규모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둘째, 썩은 사과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조직 내에는 그들을 비호하는 세력이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셋째, 썩은 사과는 절대 회복할 수 없다. 많은 리더들이 충고와 조언으로 그들을 교정하려 하지만, 이는 순진한 생각에 불과하다. 썩은 사과에 대한 리더들의 전략이 대부분 실패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넷째, 썩은 사과는 결코 혼자 썩지 않는다. 썩은 사과는 강력한 독성으로 주변을 오염시키며, 이것을 방치하면 반드시 조직시스템 자체를 망가뜨리는 결과가 나타난다.

이상의 법칙을 차근차근 알아나감으로써 썩은 사과의 행동방식을 이해하고,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책의 후반부에서 소개되는 TOCS 방법은 썩은 사과를 처치하고 이들로 인해 타격을 입은 조직과 구성원을 회복시키기 위한 조직 전체 ·개별 팀·개인 차원의 다층적 전략입니다.


조직 차원의 전략은 인사평가 및 피드백 시스템·교육 프로그램 등을 정비하고 조직문화를 일신함으로써 썩은 사과를 퇴치하는 것은 물론, 절대 썩은 사과가 발붙일 수 없는 건전한 환경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기왓장 아끼려다 대들보 썩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혹시 당신의 조직 또한 눈앞의 성과에 매몰된 나머지 ‘상호존중의 가치’라는 기왓장 하나를 간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1명의 문제아라고 가볍게 치부하다가는 작은 위험요소로 인해 거대 조직이 무너져버리는 처참한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문제인물을 제거하는 것을 넘어, 조직의 기초를 곤고히 함으로써 절대 무너지지 않는 백년기업을 만드는 힌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썩은 사과를 단순히 제거 했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얼마나 '방치'했느냐에 따라서 퍼져버린 썩은 사과는 급격하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빨리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요. 저자들은 직장에서 대부분 누가 썩은 사과인지 알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집어내기 위해서는 교묘한 행동패턴을 장기적으로 구사하는 사람을 파악해야 한다고 합니다. 썩은 사과는 다음과 같은 행동유형을 보입니다.


 

 

 

 지금 당신의 머리 속에 '그' 사람이 혹시 썩은 사과가 아닐까 생각되십니까? 그 사람을 머리속에 두고 다음 질문에 답해보세요...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CEO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썩은 사과를 제거한 사례로 안철수 연구소의 안철수 교수를 꼽았습니다. 당시 부드러운 리더십과 온화한 인화력을 보여운 안교수는 아주 단호한 측면이 있었는데, 바로 썩은 사과를 제때 제거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파벌을 형성하면서 다른이들을 헐뜯거나 편 가르기를 하려는 기미가 보이면 '썩은 사과'로 판단해 과감하게 해고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CEO나 경영인들은 썩은 사과의 대처 방법이 아직은 미흡하고 심지어 방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도저히 '짜를 수'없거나 그 인품을 개조할 수 없다면 그들이 활개를 치도록 방조하는 조직문화를 개조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선은 어떤 상자가 썩은 사과를 양산하는지 진단합니다. 저자가 밝혀낸 '썩은 사과'를 키우는 조직시스템의 특징은 기업의 세부 목표가 구체적이지 않는 조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조직입니다. 썩은 사과가 망쳐버린 조직문화는 어떻게 복구해야 할까요? 저자들은 "썩은 사과를 견디며 직장생활을 한 사람들은 공공의 '적'을 두고 부정적인 감정을 공유하며 위안을 느껴왔기 때문에 이 감정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팀 차원의 수련활동을 거쳐 조직의 '핵심가치'를 팀원들이 함께 정하는 것이야 말로 건강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일 수 있습니다.

 

 

썩은 사과를 가지고 만든 물김치입니다. 썩은 사과를 이렇게 다시 활용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 썩은 사과가 완전히 '다'썩어서는 안되겠지요... 만약 다시 써야 한다면 모두 다 썩어버리지 않도록 빨리 조치하셔야 합니다. 안그러면 물김치도 어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