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높이기
중국요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좋은 소식이 얼마전 있었습니다. 바로 중국 10대 식당으로 꼽히는 화쟈이웬(花家怡園)이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화쟈이웬은 베이징(北京)에 8개 사업장을 거느린 중국음식 체인으로, 본점 한 곳의 1년 순수익이 160여억원(1억 위안)을 헤아리는 곳입니다. 화쟈이웬 전체의 1년 순수익은 400억원(2억6000만 위안)을 웃돌고, 직원 수는 2600명이 넘는 초대형 중국식당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진출했어도 충분한 이야기거리였을 텐데 더 관심을 가지게 한 것은 문을 연 곳이 다름아닌 춘천의 남이섬이기 때문입니다. 상식을 깨는 일이 빈번한 남이섬이래도 화쟈이웬과 남이섬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닌 듯한 생각이 우선 들었습니다. 남이섬을 가보신 분들은 많이 느끼셨을 겁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아기자기한 전시품들... 하지만 먹거리는 늘 고민이었습니다. 가족끼리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먹거리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러한 고민은 남이섬 강우현(57)사장의 오랜 고민이기도 했습니다. 얼마전 모 일간지에 강사장과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기사여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강 사장은 남이섬에 들어온 지 10년 만에 남이섬을 한 해 200만 명이 방문하는 명소로 바꿔놓은 장본인입니다. 그러나 음식은 늘 걱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한숨만 쉬고 있을 강 사장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여름 그는 평소 친분 있는 주한 중국문화원 간부들에게 강짜 부리듯이 부탁을 했습니다.
“해마다 남이섬에 외국인 30만 명이 들어오는데 그중에서 17만 명이 화교권 국가에서 옵니다. 한류 성지 남이섬에 번듯한 중국식당 하나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소.”
1 화쟈이웬 남이섬점 풍경. 남이섬의 예쁜 자연이 창밖에 펼쳐진다. 2 만찬에서 맨 처음 나온 치킨샐러드 ‘이원파왕계’. 3 겨자연어요리. 4 새우볶음요리인 ‘조초명하’. 5 베이컨관자쌀요리. 6 양갈비 요리인 팔기소양배. 7 딤섬. 8 팔보목통두부. 9 배추절임요리 ‘북경미도’.
화레이 사장이 낙담한 채 돌아가고서 한 달 뒤 강 사장이 중국으로 날아갔습니다. 화레이 사장 앞에서 그는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 한자로 화쟈이웬을 세로로 쓰고, 남이섬을 가로로 썼습니다(사진). 가운데 ‘이(怡)’자가 같은 한자였습니다. ‘이’ 자를 가운데 두고 십자가 모양의 문양이 완성됐습니다.
중국문화원은 곧바로 중국 문화부와 외교부에 보고를 했고, 중국 정부는 신속히 중국요리협회에 엄중한 내용의 공문을 내려보냈습니다. ‘중국요리협회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식당을 선정해 한국 남이섬에 지점을 내도록 조치하라’. 공문을 받아든 중국요리협회는 최근 10년 넘게 중국 음식업계 선두를 지키고 있는 화쟈이웬을 골랐고, 화레이(花雷·43) 사장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지난해 12월 화레이 사장이 남이섬에 도착했습니다. 남이섬은 그러나 너무 작았습니다. 식당도 2층 높이 면적 2500㎡ 건물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베이징에 있는 가장 작은 지점도 이 건물보다 컸으니까요. 그 건물을 다 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전체 건물의 4분의 1이 조금 넘는 690㎡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정부 명령이어도 이건 아니었습니다. 화레이 사장은 13일 “그땐 정말 실망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남이섬에 화쟈이웬이 들어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화쟈이웬과 남이섬은 같은 운명입니다.”
강 사장의 설득에 화레이 사장도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계약을 했습니다. 남이섬에서 생기는 수익은 남이섬이 갖고, 본사에서 파견하는 직원 12명의 월급은 남이섬에서 주기로 했습니다. 대신 화쟈이웬은 최소한의 로열티를 받기로 했습나다.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일부 식기와 조미료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산 재료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음식은 정통 화쟈이웬 방식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음식을 통한 문화교류가 화쟈이웬 남이섬점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강사장은 말합니다.
“남이섬이 돈 벌려고 중국집 하겠어요? 화레이 사장을 설득한 건 디자인이었고, 남이섬에서 중국음식을 먹는 건 중국 문화를 체험하는 거예요. 중국인이 남이섬에 베이징오리 먹으러 온다고 할 때까지 장사할 겁니다.”
베이징오리 요리는 모두 98회 칼질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오리는 부위마다 맛이 다르고 미묘한 맛의 차이가 칼에서 나오기 때문에 중국에서 전문 인력을 보냈다고 합니다. 화쟈이웬은 평균 300가지 요리를 제공합니다. 이 중에서 남이섬에는 일단 80여 가지만 선보인다고 합니다. 화쟈이웬은 중국에서도 깔끔하고 세련된 맛으로 유명합니다. 정통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실험을 시도해 외국인에게도 맞는 맛을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꼭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아는 지인에게 알려주려고 했는데 그 분은 이미 다녀오셨다고 합니다.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비싼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맛을 넘어선 뭔가가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전문가의 손길, 담겨지는 그릇의 조화, 상차림의 시각적인 즐거움, 그리고 식당이 생기기까지의 스토리텔링 등이 음식의 가치를 그만큼 높였기 때문입니다.
선술집에서 고급와인을 종이컵에 따라서 마시는 것과 고급레스토랑에서 똑같은 와인을 소믈리에의 설명을 들으면서 고급와인잔에 마시는 것은 같은 것을 마심에도 불구하고 같은 맛의 경험이 될 수 없습니다. 바로 같은 상품에 다른 가치를 입혔기 때문입니다.
치과에서 똑같은 치료를 해주었다고 해서 똑같은 치료에 대해서 똑같은 가치로 느끼지는 않습니다. 잘 소독된 정돈된 방에서 친절한 설명과 앞으로의 관리에 대한 세밀한 계획을 듣고 받는 치료는 어수선하게 빨리 처분되는 듯한 치료와는 분명 다른 가치입니다. 입안에 들어가는 똑같은 재료라도 그 가치는 분명 다르게 느껴집니다.
무라카츠 다츠오의 <고객의 80%는 비싸도 구매한다>에는 상품에 가치를 더하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상품을 돋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상품을 담아내는 방법에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가족적인 분위기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상을 주는 것이 최선이겠지요.
두번째는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상품 자체에 대한, 혹은 상품을 만들어낸 사람이나 회사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텔링이 그것입니다. 고객은 그 상품 자체에 만족할 수도 있지만 그것에 더해 있는 스토리를 더 좋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악센트입니다. 상품에 포인트를 주는 것입니다. 고객이 원하는 핫버튼이 있다면 그것에 맞는 적절한 포인트를 주는 것이 그 상품의 가치를 극대화시킵니다.
네번재는 추천입니다. 소비자는 늘 '권위 있는 상품'과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상품'에 약하다고 합니다. 믿을 만한 기사나 추천장, 많은 사람의 좋은 체험 등을 선호하는 게 그 이유입니다.
다섯번째는 희소화입니다. 수량이나 기간을 한정화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살 수 없다는 생각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지요.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연출하고 '에피소드'를 추가해 '악센트'를 줘서 '추천'을 근거로 삼아 '희소화'를 도모하는 것이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에게 맞는 가치 높이기는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치과에서의 가격경쟁이 이제는 하향 저가경쟁이 되고 있습니다. 진정 환자고객이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우리가 고민해 봐야 합니다. 고객의 80%는 비싸도 구매할 의사가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20%를 위해서 치료의 질을 떨어뜨릴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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