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두번째 에피소드

김동석원장의 책갈피 (188) 사람 공부

수리수리동술이 2012. 4. 15. 17:52

사람 공부하기

 

 고양이를 분양받은지 두달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기억은 너무나 생생합니다. 오랜 시간 개를 키웠기 대문입니다. 밥을 먹던 개를 잘못 건드려서 물린 적이 있어서 무서워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키우던 개는 늘 우리 가족 곁에 있는 충직한 동물로 인식됩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좀 달랐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고양이에 대한 잘못된 미신이 많이 있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애완묘를 키우는 사람들이 주변에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고양이를 음성(陰性) 으로 파악했습니다. 생리적으로 고양이의 눈동자는 어두운 밤에 달처럼 둥글게 되고 밝은 낮에는 가늘어 집니다. 밤과 달은 음성이고, 야행성인 고양이도 음성으로 보았습니다. 여성도 음성인지라 우리 선조들은 음험하고 앙칼진 것으로 대변되는 고양이의 기질과 여성을 비슷하다고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속에 음침한 마음을 가지고 겉으로는 유들유들한 행실을 일컬어 묘유(猫柔)라고 했고 여인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음성을 묘무성(猫撫聲)이라고 했던 것이지요. 어렸을 때 저희 집에서도 고양이를 키운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양이가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덜컥 배가 불러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더니 왠 걸, 새끼 고양이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나갔다가 다시 배가 홀쭉해서 들어와 버린 겁니다. 어머니께서는 "부정한 것" 하시며 그 이후로는 고양이를 잘 키우지 않으셨습니다. 저의 기억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양이를 분양받으면서도 조금 찜찜하지 않았었나 합니다. 저는 객관적으로 고양이를 알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몇 권의 책을 구입해서 보았고 특히 '고양이 공부'란 책을 통해서 저의 잘못된 고양이에 대한 생각을 많이 고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를 공부해서 고양이와 더 친밀해지고 고양이와의 소통이 더 원활해 진다면 사람을 공부하는 것이야 말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할까란 생각을 해봅니다. 고양이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공부를 했을까요? '또 공부야?'라고 할 정도로 늘 공부에 쫓기듯 살아왔기 때문에 사람을 공부하자는 것이 다소 짜증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공부는 평생해야 하는 것이고 또 사람을 잘 알고 이해하고 살아야 우리의 삶도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조금 난감한 이 주제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하면서 '사람 공부'를 한 분이 있습니다.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를 통해 인문학적 깊이와 날카로운 통찰로 대한민국 리더들을 열광시켰던 콘텐츠 크리에이터, 정진홍 교수가 바로 그 분입니다.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삶이 나아갈 방향과 태도를 제시했던 저자는 이제 ‘사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인문이 통찰의 힘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면 그 통찰의 열쇠는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사람을 아는 것’이 우리 삶의 지표이자 살아가는 힘이 된다고 말합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거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그 누구에게서도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냥 같이 지낸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과 다른 차이로 나만의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사람의 삶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만나고 부딪치는 사람들 모두가 나의 스승이며 각각의 사람들의 모습을 공부하고 체화함으로써 자신의 레퍼런스(reference)가 만들어진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레퍼런스는 단순한 지식이 아닌 그 사람을 규정하고 정의하는 총체로, 즉 사람은 자신의 레퍼런스만큼 세상을 알고, 보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둘러싼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레퍼런스를 키워야 하고 그것은 바로 사람을 공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타인의 삶을 보고 그 사람과 관련된 세계의 텍스트를 읽으며 그 삶의 텍스트를 내 안에 이식하고 뿌리내리게 하여 궁극적으로 그것을 체화하는 과정의 기록입니다. 체화란 단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자기 안에 감춰진 가능성의 금광을 발견하는 일과도 같습니다. 결국 사람공부를 해야 하는 궁극적 이유는 내가 나 되기 위함입니다. 나다움을 발견하고 그 특별한 ‘차이’를 지속하여 삶의 궤적을 만들어 가는 것이 곧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1권에서 ‘사람공부’ 본연의 가치, 즉 다른 사람의 인생을 공부하고 체화함으로써 레퍼런스를 만들 것을 중점으로 했다면, 2권에서는 특별한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찰나’의 축복과 ‘일상’의 경이로움을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살아 있음’은 그 자체로 경이요 감격이며, 축복이고 또 기적이라고. 그리고 그 살아 있음의 주체인 ‘사람’ 역시 기적이라고 말입니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도 알려진 많은 사람들의 삶의 면면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릴 때의 우직한 힘으로 글을 써나가고, 가장 불행한 화가로 알고 있던 반 고흐는 오히려 생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캔버스에 펼쳐냈으며, 무적의 장수로 바다를 호령했던 이순신은 너무도 인간적인 고뇌로 괴로워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각각의 생의 궤적 뒤에는 그들을 공부했던 저자의 치밀한 체화의 흔적이 보인다. 그것은 열정, 의지, 매혹 등으로 구분 짓기도 했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핵심은 ‘사람’입니다.


 부모를 잃은 데다 맹인까지 된 기구한 운명을 거부하고, 미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위원(차관보급)이 된 고(2) 강영우 박사의 드라마틱한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 기적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삶의 그늘진 곳에서 민중운동가로, 혁명가로 치열한 삶의 살아온 백기완 선생의 삶에서, 전 세계로 그 씨앗을 뿌린 해비타트(사랑의 집짓기) 운동의 창시자 밀러드 풀러 부부에게서 또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평생을 바친 고 박병선 박사, 무일푼의 가발공장 여공에서 하버드대학 박사가 된 서진규 씨,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장애를 극복하고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오토다케 히로타다 등 자신의 온몸으로 희망을 증거를 쓰고, ‘기적’을 증명해낸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고, 그 깊이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책 속의 위대한 인물처럼 되고 싶은 열망, 그들처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 등이 독자들의 삶에 절절한 의미로 다가오며, 그것은 곧 철학과 인문학으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인문의 끝은 사람공부라고 저자는 단언합니다. 이 책은 역사 속의 혹은 현대의 인물들을 가리지 않고, 치열하게 보여주고 재해석하며 그들의 면면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질문합니다. 그리고 그 해답은 이 책에 등장한 사람들의 인생을 살펴보고 고민하며 공부할 때 찾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여정과 굴곡, 극복의 과정을 간접체험하면서 내 안의 가능성을 일깨우고 삶의 철학과 방향을 확실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