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두번째 에피소드

김동석원장의 책갈피(171) 최고급 쓰레기통

수리수리동술이 2011. 7. 24. 22:26

최고급 쓰레기통

 

 바지 20벌, 와이셔츠 및 티셔츠 30벌, 코트 5벌, 양말 15족, 신발과 구두 8 켤레, 모자 5개, 책 140권, 잡지 200여권, cd 70여장, dvd 300여장, 사진 약 80기가바이트, 그릇 및 접시류 2박스, 종이서류 4박스,... 지난주 집 물건을 정리하면서 나름 잡동사니로 전락해 버렸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추려서 버린 양입니다. 사실 더 많이 버려야 하지만 미련이 많이 남아서 사실 잡동사니지만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직 많이 있습니다. 일부분이지만 이 물건들을 버리기 전과 버린후의 느낌은 많이 달랐습니다. 버리기 전에는 굳이 왜 버려야 하나, 간직해서 나쁠 것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버리려는 갱각때문에 다시 들여다 본 것이지 대부분 1년이상 입지 않는 옷, 다시는 읽을 것 같지 않은 책, 듣지 않는 cd, 보지 않는 사진,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었습니다. 버리고 나니 그것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아무런 허전함도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공간이 생기고 컴퓨터가 빨라지고 옷장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도 시원해지고 여유가 생기는 신기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물건을 버리고 청소하고 하는 것을 전문적으로 다룬 책이 꽤 있었습니다. 모두 일본 저자가 대부분이었는데 그중 <성공을 부르는 청소의 법칙>, <책상을 치워라>의 마스다 미츠히로와 <버리는 기술>의 다쓰미 나기사는 제가 무척이 나 좋아하는 대표적 작가입니다. 일본은 집이 작은 편이고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필요성'이 대부분 많기 때문에 효율적인 공간관리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버려야 할 것들을 잘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공간의 효율성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도 있는 좋은 내용들이지요.

 

 

 

 

 

 

 하지만 브룩스 팔머의 <잡동사니로부터의 자유>란 책은 일본 저자의 책과는 좀 달랐습니다. 이 책은 설마 이런 것을 치워야 하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버리기의 '과감함'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잡동사니 심리학에 대해서 꽤 심도 깊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희한한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끌어안고 사는 잡동사니를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며 보상을 받는 직업입니다. 이른바 '잡동사니 처리 전문가'(clutter buster)입이다. 이를테면, 집안의 소파는 물론 런닝머신과 침대 위에도 옷가지를 걸쳐놓고, 책상 위에도 이런저런 물건을 너저분하게 쌓아 놓고 사는 사람이 혼자 감당하지 못해 'SOS'를 치면 이 전문가가 와서 도와줍니다다. 이 책의 저자가 실제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책에서 그는 무엇을 버릴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잡동사니가 무엇이고, 그게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말해줍니다. 직접 만났던 고객들의 생생한 잡동사니 사례들과 물질적인 잡동사니가, 실은 마음의 잡동사니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심리학적 측면까지 분석하는데, 마치 '갱생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재미와 감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자는 잡동사니가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 즉 자기 학대라고까지 말합니다. 예컨대 한 주부는 부엌을 끔찍할 정도로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살고 있었습니다. 냉장고 속 물건은 죄다 썩었고, 식탁은 책과 우편물, 신문, 오래된 음식이 가득 쌓였습니다. 저자는 그곳에서 가족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주부의 절망감을 읽었습니다. 그는 잡동사니를 함께 정리하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게 우선"이라는 말을 들려줍니다. 작은 원룸을 수 백권의 책으로 가득 채운 여성도 만났습니다. 대부분의 책은 언젠가 읽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었고, 그는 책을 모두 간직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휴식처가 되어주지 못한 집에서 책더미는 여자를 포로로 잡은 형국이었습니다. 저자는 "사람들은 자신을 지적이고 근사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물건들로 무장하고 싶어한다"며 그것은 일종의 무력감의 표현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지금 그대로 충분하다고 여길 때 불필요한 책도 잘 처분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추억들이 광란의 축제를 벌이게 해놓고 사는 사람들도 적잖다고 말합니다. 침실에 동물 봉제 인형만 50개 이상을 갖고 있던 가수, 옷장 문을 열 수 없을 만큼 옷더미에 갇혀 있던 여성, 5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의 유품에 둘러싸인 남성, 독립한 아들의 물건을 치우지 않은 부부…. 저자는 우리가 잡동사니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과거의 족쇄에서 풀려나지 못하는 것이며, 일종의 중독이고, 변화에 대한 저항이라고 말합니다. 더 많은 물건을 축적함으로써 자신을 방어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장애물을 정면으로 돌파하려면 일단 잡동사니부터 버리라고 조언합니다. 삶을 단순화함으로써 생각의 명료함과 통찰력을 되찾으라는 이야기 입니다.책을 읽으며 머릿 속으로 먼저 해본 잡동사니 버리기 시뮬레이션은 예기치 못한 즐거움과 쾌감을 줍니다. 집안에 간직해 둘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우리 주변에 은근히 많은 잡동사니 중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책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공간을 아름답게 잘 꾸미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은 버릴 것이 없다고 생각이 되신다면 이 책을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저 또한 버릴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드니까요. 하지만 엄청난 양의 잡동사니를 버리고 나니 새로운 공간, 여유 뿐 아니라 마음도 가벼워지는 야릇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쩜 내가 있었던 공간은 가장 럭셔리한 쓰레기통 속이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아직 잡동사니를 다 처분하지 못했습니다. 내 마음속에 아직 그것을 잡동사니라고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시간이 걸리더라고 더 많이 버려야 합니다.

 이 책은 친절하게도 마지막에 잡동사니 비우기의 원칙을 42가지나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정 시간이 없으시다면 뒷페이지 3장 만이라도 읽어보세요. 도움이 될 겁니다.

 

 

 

 

잡동사니 비우기의 원칙

 

......

■ 일 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은 잡동사니다

■ 기분을 언짢게 만드는 물건은 잡동사니다

■ 어떤 물건을 버릴 것인가, 간직할 것인가 결정하는데 우물쭈물한다면 그것은 잡동사니다

■ 아무것도 침대 밑에 두지 마라

......

■ 사진들은 대부분 잡동사니다. 우리는 당시의 황홀한 순간을 간직하려고 발버둥 친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은 다 옛날 얘기다. 우리는 환영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 망가져서 고칠 수 없는 것이나 고치고 싶지 않은 물건은 무엇이든 버려라

■ 다른 사람에게 어떤 물건을 간직할지 말지 의견을 구하지 마라

■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은 버리거나 다른 사람한테 넘겨라

■ 옛날 애인으로부터 받은 연애편지, 이메일, 선물은 버려라

......

■ 과거가 지금 이 순간보다 특별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물건, 그때만큼 좋은 시절이 없었다고 옛날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물건은 무엇이든 버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