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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원장의 책갈피 (145) 새해는 묘(卯)한 느낌으로

수리수리동술이 2011. 1. 1. 22:56

새해는 묘(卯)한 느낌으로

 

제가 성적인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하게 된 중학교 시절만해도 지금처럼 쉽게 여자 사진이나 동영상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종로의 세운상가 건물 근처를 지나갈 때면 "이봐, 학생. 재미있는 거 보여줄까?"하면서 유혹하는 형들이나 아저씨들이 많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야한 도색잡지를 터무니 없는 고가(?)로 사게 하는 나쁜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성적인 호기심이 왕성했던 친구들 중 일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어렵게 샀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그것을 또 학교에서 돈 받고 보여주는 더 나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최고의 잡지상품(?)으로 취급되던 것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그 유명한 미국의 플레이보이 잡지였습니다. 턱시도를 한 토끼 로고의 강렬함은 그 당시 접해보신 분들은 분명 아직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60,70년대의 빈티지 플레이보이 잡지

 

 

지금 생각해보니 왜 하필 토끼가 로고가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야한 농담 중에는 조루증에 걸린 남성을 빗대어 '토끼'라고 부르거든요. 참고로 토끼의 교미시간은 1~3초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의 개념 보다는 발정기가 따로 없는 특이한 동물이 바로 토끼라는 겁니다. 이 의미는 항상 어느때나 교미를 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즉 교미를 많이 하는 특성과 플레이보이 잡지의 이미지가 잘 맞아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 토끼머리 로고를 처음 만든 아트 폴(Art Paul) 초대 아트디렉터는 토끼의 장난스런 이미지와 놀기 좋아하는 이미지 때문에 결정했고 조금 세련되게 보이려고 턱시도를 입혔다고 합니다.

 

사실은 토끼가 시도때도 없이 교미를 하는 이유는 종족의 보존이라는 무거운 사명감이 있어서 입니다. 늘 잡혀먹히는 토끼들이 많았기 때문에 빠른 번식 능력이 없으면 멸종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호주에서의 140년 토끼전쟁은 이런 왕성한 번식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천적이 없는 호주에서 1859년 유럽 이주민으로부터 들어온 12마리의 토끼가 2~3억마리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 토끼들이 망쳐버리는 농작물과 목초들은 사람뿐아니라 다른 동물들이 먹을 것 마져 없게 해버렸습니다. 늘 토끼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70%를 죽여도 1년 안에 원상태로 복구시키는 놀라운 번식력 때문에 씨를 말리지 않는 한 호주에서는 언제 다시 토끼 재앙이 올지 몰라하고 있습니다.

 

종족 보존을 위해서 토끼가 가지는 특성은 이런 번식력에만 있지 않습니다. 신체적인 특성이 위기가 닥쳤을 때 도망가기 좋은 최적의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앞발이 짧고 뒷다리가 긴 토끼의 신체특성은 평지에서 아무리 빠른 짐승도 산으로 올라가는 토끼를 절대 따라잡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날쌔게 도망가는 토끼의 모습을 '탈토지세(脫兎之勢)'라고 불렀습니다.

 

토끼의 생존전략은 재치와 꾀로 무장한 영특함에 또 있습니다. 토끼는 굴을 파 놓을 때 반드시 세 군데 이상을 파 놓는다고 합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도망갈 길을 유리하게 만들거나 적을 교란시키기 위한 수단이지요. 이런 영특한 면을 일컬어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고 부른 이유입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에 어떤 일들이 생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토끼가 가지고 있는 이 특성을 잘 적용시킨다면 그 어떤 위기에서도 잘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맨파워를 키우고 위기에 견딜 수 있는 조직의 구조를 새로 구축하고 위기의 대비책을 다방면으로 준비한다면 말입니다. 잔꾀를 부리는 토끼로 생각하지 말고 영리한 토끼에게서 지혜를 배웁시다. 이렇게 묘(卯)한 느낌으로 한 해를 시작하네요.